※ 이 글은 전시 감상 및 문화유산 기록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사용된 사진은 현장에서 직접 촬영한 이미지이며,
필요한 경우 관련 기관, 단체 또는 공개된 자료를 참고하거나 일부 포함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출처를 반드시 포함하겠습니다.
1. 도입부


신라 선덕여왕 시기 창건된 삼화사는 오랜 수난을 겪은 끝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왔다.
원래 위치로 비정되는 원삼화사지 (삼화동 714)는 최근 발굴 조사가 진행되었다.

적광전에 봉안된 철조 노사나불상은 묵직하면서 정적인 분위기를 보이는데,
1967년 신라오악학술조사단에 의해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발견 당시 머리를 제외한 신체 곳곳에 훼손과 결실이 심해 시멘트로 보수했으나,
1996년 불상 뒷면에서 명문이 확인되면서 제작 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단서를 얻게 되었다.
다만 현재의 상은 자료가 빈약하여 제작 당시 원형과 차이가 있었을 것으로 보이며
발굴 조사를 통해 원형을 밝혀줄 자료가 발견되기를 기대해 본다.
2. 도상

높이 144.4cm의 이 불상은 앞서 언급했듯 실제 원형과 다소 차이가 있었을 것이 분명하나
현재로서는 본래 모습을 알 수 없다.
또한 머리에 비해 어깨가 매우 넓고 상체는 길쭉한 반면 하체는 두껍게 복원되어 비례가 어색하다.
조사 과정 중 불상 뒷면에서 명문이 발견되었는데,
총 161자로 판독 가능한 글은 140여 자다.
| 명문 |
|
■■■■■■國人云疎勒又靑丘時云新」
■■■■釋迦佛末法三百余年成佛時國」 ■■■■王願由決盡敎華嚴業決言太大」 德▨▨伯士釋氏乘炬發心旦越釋氏廳默」 釋氏僧道利ホ上首十方旦越同心同願盧」 舍那佛成大志由盧舍那佛大願力由故當」 來下生彌勒尊此處華嚴經說此大因緣由」 ▨▨劫出現佛每此處華嚴大不識儀經」 ▨▨▨成發心旦越父體虛母念法作」 ▨▨見勤作沙彌金解善行」 |
| 유시내. (2014). 「삼화사 철불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2–23쪽 |
명문을 통해 왕이 발원하고 승려 결언을 포함한 여러 승려가 조성에 참여했으며,
불상의 존명이 노사나불(盧舍那佛)임을 알 수 있다.
왕의 이름은 확인되지 않지만, 승려 결언(業決)의 행적을 통해
경문왕과 헌강왕 시기인 861년~886년에 불상을 제작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이 시기 제작된 대표 불상은
도피안사 철조 비로자나불좌상, 보림사 철조 비로자나불좌상, 남원 실상사 철조 여래좌상 등이 있다.
삼화사 철불과 이들 사이에 유사한 조형적 특징이 보여 복원 당시 범본으로 삼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국가 차원에서 발원된 불상임에도 불구하고 치밀하지 않은 제작 수법과
좌우 반전된 명문 등은 오히려 지방 호족이 주도한 불사일 가능성을 시사한다.

가장 상태가 양호한 머리는 인간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는 통일신라 말기 사굴산파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원만하게 이어지는 눈썹과 약간 옆으로 찢어진 반개한 눈은
명상에 잠긴 분위기를 표현한다.
인중은 도톰한 입술로 인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소라형 나발이 촘촘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솟아오른 육계와 머리의 경계선은 불분명하다.
이마는 매우 좁고 중앙에 백호공이 있다.
귀는 어깨에 닿을 정도로 길게 표현하고,
이중으로 표현된 턱 아래의 짧은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착의법은 전반적으로 철불이라는 재료의 한계로 도식화가 많이 진행된 모습이다.
양쪽 어깨를 덮고 있는 대의 옷자락은 가슴으로 내려오면서 v자형을 이룬다.
오른쪽 옷깃과 왼쪽 옷깃의 주름이 달라 이중 착의법을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몸에 밀착해 신체의 굴곡을 드러내고자 했으나,
보림사 철불과 비교하면 옷주름을 두껍게 표현해 전체적으로 둔탁한 인상을 준다.

양쪽 겨드랑이는 u자형 옷주름을 반복해서 표현했다.
허리의 띠 매듭은 두 가닥의 끈이 내려오는 나비형 띠 매듭이다.


삼화사상의 가장 주목할 특징은 수인이다.
현재 이 불상은 시무외여원인을 취하고 있다.
복원 이전에는 양팔이 결실 된 상태였고, 약사불로 전칭 되었기 때문에
수인=존명으로 직결되는 수인은 채택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양팔의 각도와 위치를 바탕으로 현재 수인이 설정된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이 수인이 제작 당시의 원형이라면,
불사 주도 세력 혹은 제작자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시무외여원인을 취한 노사나불의 도상을 인지하고 있었거나,
혹은 당시 사람들이 혼용하여 사용했음을 시사한다.



광배는 목조로 제작했으나 현재는 제거한 상태다.
3. 참고문헌
- 유시내. 「삼화사 철불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4.
- 강건우. 「實相寺 鐵佛 硏究」. 『불교미술사학』 15. 2013. 쪽 71–100.
- 김창호. 「東海市 三和寺 鐵佛 造像의 역사적 의미」. 『경주문화연구』 5. 2002. 쪽 242–252.
- 김창호·한기문. 「동해시 삼화사 철불 명문의 재검토」. 『강좌미술사』 12. 1999. 쪽 181–194.
- 곽동석. 『금동불』. 예경. 2000. 쪽 286.
- 한국학중앙연구원. 「삼화사 철불」.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6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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