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경주 기림사 건칠보살반가상
 

[국립중앙박물관] 경주 기림사 건칠보살반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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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 경주 기림사 건칠보살반가상, 보물_경주 기림사 건칠보살반가상_20160908-24_문화재대관(보물-불교조각1), 소장처: 기림사, 출처: 국가유산청


보물 경주 기림사 건칠보살반가상은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새 나라 새 미술: 조선 전기 미술 대전'에 전시되어 있다.
조선 전기 16c에 제작된 이 불상은 가장 이른 시기의 기년명 보살로,
15세기와 16세기 양식을 모두 반영하고 있고 현재는 경북 경주 기림사에 소장되어 있다. 

 

기림사상은 건칠 기법으로 제작되었다.

일반적인 제작 과정은 흙으로 대략적인 형태를 만든 뒤, 

종이와 삼베 등을 덧붙이고 수분이 많은 환경에서 건조하는 과정을 반복하여 일정한 두께를 형성한 후 

표면에 채색이나 도금을 입혀 완성한다.

그러나 이 불상은 대략적인 형태만 잡은 뒤, 섬유질로 추정되는 반죽을 사용하여 제작 시간을 크게 단축했다.

 

높이 93cm, 전체적으로 세장화되고 양감이 풍부한 모습으로

한쪽 다리는 올리고 다른 쪽은 내린 유희좌와 옷자락이 대좌를 덮은 상현좌를 하고 있다.

건장한 신체에 비해 손과 발은 빈약해 보이며, 왼팔은 대좌 뒤쪽을 짚고 오른손은 아래로 내린 다리의 무릎 위에 있다.

장엄구는 15세기에 비해서 간단하게 표현되었다.

보관은 2단 구조로, 앞면에 두꺼운 당초문이 새겨져 있고, 곳곳에 화불을 꽂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작은 구멍이 뚫려 있다.

귀걸이는 4엽의 꽃모양이며, 양쪽 팔에 착용된 팔찌는 문양이 없는 단순한 구조다.

목걸이는 화형 장식을 중심으로 수식이 복부까지 내려와 있었으나, 

개금 후 유실되어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머리에는 세 갈래로 나뉜 보계를 표현하고 수발은 생략되었으며,
일부 머리카락이 귀 앞쪽을 감싸듯 흘러내려, 다시 뒤쪽 보관으로 들어갔다.

얼굴은 조선 전기의 전형적인 얼굴의 특징을 보인다.

가늘고 길게 올라간 눈, 반원 형태의 눈썹과 코, 입 주변은 움푹하게 들어가 입체감을 형성하며

좁고 긴 얼굴형에 양감이 강조되어 있다. 

폭이 넓은 천의를 숄처럼 어깨 위에 두른 후 팔목을 감싸고 대좌까지 내려오고,

가슴까지 올라온 승각기는 띠 매듭으로 묶여 있다.

허리의 띠는 복부에서 좌우대칭을 이루며 올라온 군의 안쪽 면이 겉으로 드러나 있다.

복부 양옆은 요포로 덮여 있고, 군은 대좌까지 흘러 내려와 자연스러운 주름을 형성하고 있다.

대좌는 상·하단으로 나뉘는 목조 대좌로, 

과거에는 상단에 암좌가 있었으나 1970년대 이후 유실된 것으로 보인다. 

경주 기림사 건칠보살반가상 목조대좌 일부, 보물_경주 기림사 건칠보살반가상_20160908-38_문화재대관(보물-불교조각1), 소장처: 기림사, 출처: 국가유산청

상단의 저부에 총 7줄의 묵서가 적혀 있다.
이 불상은 홍치 14년(1501) 정월에 조성되어 4월 초파일에 완성되었고, 원 봉안처는 함월산 서수암이다.
발원자는 전 태내 군수 이원림과 승려 지희 등 6명 이상이며,
현존 보살상 중 유일하게 '낙산관음보살'을 조성했다고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 참고문헌
  • 김지은. 「1501년 <경주 기림사 건칠보살반가상> 연구」. 동국대학교 일반대학원 국내석사학위논문. 2024. 서울.
  • 손태호. 「朝鮮 前期 佛像 硏究」. 동국대학교 국내박사학위논문. 2019. 서울.
  • 김광희. 「16세기 보살상(菩薩像) 연구」. 『문물연구』 14. 2008. 쪽 103-136.
  • 어준일. 「조선 전기 16세기의 불교조각 연구」. 『불교미술사학』 16. 2013. 쪽 73-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