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미술관] 여산초당
 

[간송미술관] 여산초당

※ 이 글은 전시 감상 및 문화유산 기록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사용된 사진은 현장에서 직접 촬영한 이미지이며,

필요한 경우 관련 기관, 단체 또는 공개된 자료를 참고하거나 일부 포함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출처를 반드시 포함하겠습니다.

 

 

 

오늘 소개할 작품은 당나라 시인 백거이가 여산에 초당을 짓고 은거했던 고사를 주제로 한 고사인물도다. 

여산은 중국 강서성에 위치한 명산으로, 주나라의 광속이 은거하다 신선이 되었다는 전설을 지녔다.

겸재는 「여산초당기」에서 묘사된 장면을 화면 속에 옮겨오듯 구성했다.

작은 초당을 중심으로 북쪽의 향로봉, 동쪽의 폭포 그리고 남쪽 연못가에 핀 백련과 이를 바라보는 학까지 정교하게 배치했다.

그러나 이 그림은 중국의 풍경을 관념적으로 답습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정선은 조선의 실경과 인물을 바탕으로 화면을 재구성하고,
특유의 필법을 더해 그림 속 공간을 실제 존재하는 장소처럼 만들었다.

화면 전체에 묘사된 산과 나무는 묵직한 괴량감이 느껴지며,

반두준과 와운준, 수직준의 표현에서는 개성과 생동감이 엿보인다.

반면 화면 중심부의 초당과 연못, 인물은 고요하고 섬세하게 묘사되어

강한 시각적 대비 속에서 인물의 내면을 더 돋보이게 한다. 

화면 속 인물은 정선으로 보이는데, 이는 당시 겸재가 처한 상황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다.

먼저 화면 오른쪽 상단에 적힌 '여산초당 겸재'라는 묵서와 필법에서 느껴지는 완숙미를 보아 

말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대부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가문의 위세를 이어가지 못한 겸재는 생계를 위해 붓을 들었고

화원이라는 중인 계층의 한계를 넘어 종2품에 제수되는 등 당시로서는 이례적인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이러한 성공은 전통적인 사대부들에게 시샘과 공격의 대상이 되었고,

실제로 파직을 당하는 등 여러 차례 고초를 겪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속에 백거이의 삶에 자신을 투영해

그림을 통해 내면의 평온과 은거의 의지를 드러낸 것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