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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숭유억불 정책과 함께 강력한 유교주의를 표방한 국가였고, 사대부들은 고려의 멸망 원인을 불교에서 찾아 불교를 배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태종 때 본격적으로 시작된 억불정책은 토지, 전답, 사원전, 노비를 몰수해 국고로 환수하거나 종파를 7개로 통폐합 시켰고
세종은 7개의 종파를 선교양종으로 통합하고 사찰을 18개씩 36개를 제외하고 폐사시켰다.
성종 이후 더욱 강력한 억불책이 시행되고 중종 시기에 승과, 기신재, 수륙사를 폐지하면서 억불정책은 마무리했다.
강력한 억불정책과는 별개로 태종, 세종처럼 불교에 관심을 가져 불사를 행하거나 사찰을 건립하기도 했고 왕실 여성들도 불사한 것으로 보아 무조건적인 억불만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오늘의 문화유산 회암사명 약사삼존도는 조선 전기 중종의 비이자, 숭불정책을 펼친 문정왕후 시기에 발원된 불화이다.
문정왕후는 명종이 즉위하고 545년 ~ 1565년까지 약 20년간 섭정을 하였는데, 허응당 보우를 등용해서 친불교적 정책을 펼쳤다.
선교양종, 승과, 도첩제 등 억불책으로 사라진 제도의 대부분을 복구시켰으나, 사후 다시 억불이 폐지된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들은 왜란 후 조선 후기 불교의 활력을 북돋아 주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1565년 명종의 수명장수를 기원하기 위해 회암사를 중수했고, 이를 기념하고자 석가 미륵 약사 아미타불을 채색화 50매, 금선화 50매씩 총 400점을 제작했는데 400점 중 하나가 약사삼존도다.
약사불은 이름과 '약사여래본원경'인 경전에서 알 수 있듯이 모든 병과 재난에서 중생을 구제하고 수명을 연장해 주는 동방유리광 세계의 교주로 보주 혹은 약기를 들고 있으며, 약사전이라는 전각에 모셔져 있다.



왕실 발원 불화답게 채색 없이 유려하고 화려한 필선으로 그린 금니 선묘화로 16c 불화의 특징을 그대로 담고 있다.
세장하고 방원형의 양감 있는 얼굴, 가는 눈과 치켜 올라간 눈꼬리, 아치형 눈썹, 콧망울을 넘어가지 않는 작은 입과 뾰족한 육계의 광배는 이중으로 되어 있다.

발목 주위, 천의와 하의에는 뾰족하고 날카로운 톱니 모양이 표현되어 있으며



옷에는 국화문, 뇌문, 줄무늬, 동심원문, 나선문 등 다양한 문양이 보인다.


약사불이 앉아있는 앙련과 복련은 높고 화려하며, 상단의 꽃비와 구름은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다.




구도는 본존불인 약사불을 기준으로 아래에 일광보살, 월광보살이 배치된 2단 구도인데 고려시대에 주로 사용되었다.
본존불은 수미단 위에 연꽃에 결가부좌 자세로 한 손에는 약함을 들고 있고 정상 계주와 입술은 붉은색으로 표현했다.


하단에는 삼족오가 그려진 보관을 쓰고 있는 일광보살과 절구를 찧는 토끼가 그려진 보관을 쓴 월광보살이 있다.


화기에는 작품의 내역이 적혀있다.
부족한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틀린 부분 피드백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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