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1962-1, 1962-2)
 

[국립중앙박물관]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1962-1, 1962-2)

※ 이 글은 전시 감상 및 문화유산 기록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사용된 사진은 현장에서 직접 촬영한 이미지이며,

필요한 경우 관련 기관, 단체 또는 공개된 자료를 참고하거나 일부 포함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출처를 반드시 포함하겠습니다.

 

 

 

1. 도입부

 

요즘 박물관의 추세는 상징적인 문화유산을 별도의 공간에 전시하는데

대표적인 예시가 국립중앙박물관 2층 사유의 방에 있는 두 점의 반가사유상이다.

 

반가사유상은 인도에서 시작되어 다양한 형태로 변형된다.

그중 사유상은 2세기 간다라 지역에서 처음 등장해 중국으로 전래되었는데,

초기에는 태자상이 유행하다가 이후 미륵보살이 유행한다.

 

한국은 삼국시대 동·서위 말 혹은 북제주 시기에 수용된 것으로 보이며

도입 초기에는 태자상이 존재했을 것으로 보이나,

당시 삼국에서 성행하던 유가유식사상의 영향으로 미륵보살로 추정된다.

 

고대에 유행한 금동불은 청동으로 상을 주조하고 겉면에 금도금하는 형태로

불상이 제작되던 시기부터 존재했고, 불교가 전래된 모든 지역에서 금동불이 제작되었다.

 

주조 방법은 크게 분할 주조법과 밀랍 주조법이 있다.

 

① 분할 주조법

 

단순한 모양의 상을 주조할 때 사용되며 흔적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원상을 진흙으로 만든 후 박리제를 발라 점토를 올려 굳힌 다음 떼어내고 

상을 다듬고 다시 점토를 씌우는데, 빈틈에 고정쇠를 끼우고 쇳물을 붓는 방법이다.

 

② 밀랍 주조법

 

사실적이고 자연스러운 질감을 내는 등 복잡하고 정교한 상을 주조할 때 사용한다.

내형토 위에 밀랍을 익히고 상을 조각한 다음 외형토를 입혀 쇠못으로 고정하고 밀랍을 녹인 후 쇳물을 붓는 방법이다.

 

 

2. 78호상

 

3탑형 보관을 쓰고 사유하고 있는 상이다.

보관은 초승달 혹은 해+초승달을 결합한 모티브로 페르시아 사산계 보관과 유사하다.

관은 관대 장식을 이용해 세우고 있고, 관대는 양쪽 어깨까지 내려오며 연주문이 장식되어 있다.

얼굴은 갸름하고 광대뼈가 튀어나와 있고 반개한 눈과 길고 큼직한 코로 인해
엄숙한 표정으로 고뇌하는 보살의 느낌이 나며

보발은 앞에선 보이지 않지만, 뒤에서는 두 갈래로 내려온다.

 

상체와 어깨는 반듯하고 날씬한 형태로
왼팔은 자연스럽게 오른 발목 위에, 오른팔의 검지와 중지는 뺨에 살포시 올라가 있다.

 

돈자 위에 하체를 바짝 붙이고 왼쪽 다리는 족대 위로 내리고 있고, 오른 다리는 반가 자세를 취하고 있다.

천의는 양어깨를 통해 내려오며 앞가슴엔 두 가닥 천이 아랫배에서 나뉘며 바다까지 떨어지는데

양쪽은 나비매듭으로 묶여 있고, 오른쪽은 연주문을 왼쪽은 연속마름모장식을 시문 했다.

군의는 U자형과 Ω형이고, 오른쪽 다리는 S자형, 왼쪽 다리에는 U자형 주름이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표현되어 있다.

주조 방법은 밀랍과 분할 두 가지 특성이 다 나타나는데

따로 제작 후 붙인 것으로 보인다.

 

뒷면에 반타원형 등판을 부착한 흔적이 보이는데
수리 성분이 다른 것으로 보아 다시 주조했거나 별도로 수리한 것으로 보인다. 

 

3. 83호상

 

78호보다 발전된 양식으로 정면·좌우·측면에 장식 없는 3개의 반달형 삼산 보관을 쓰고 있다.

얼굴은 통통하고 갸름하며,

눈썹에서 세련되고 오뚝한 코가 아래로 내려가고 짧은 입 위에 보조개가 살짝 있어 오묘한 미소가 느껴진다. 

 

목에는 삼도가 옅게 표현되었고,

머리 뒷면은 광배를 끼웠을 것으로 생각되는 흔적이 보인다.

상체를 벗은 나형으로 아무 장식 없이 두 줄의 융기대로 이루어진 경식 1점만 있어 간결하다.

왼손은 오른쪽 발목 위에 올리고, 오른손은 검지와 중지를 뺨에 대고 사유하고 있다.

하체는 두꺼운 군의를 입고 있으며, 자연스럽게 아래로 흘러내려 곡선을 이루고

허리띠에서 내린 띠 자락이 패옥 장식 구멍을 거쳐 엉덩이 밑으로 들어가 있다.

뒷면은 허리띠에서 돈자까지 겹주름을 표현했고, 

둔부 밑으로 들어갔다가 받침대 아래에서 한번 묶은 후 바닥까지 내려가 있다.

오른쪽 무릎은 굵고 힘 있게 올라가 있고

왼쪽 다리는 아래로 내려가 있는데, 오른쪽 발가락 모양에서 생동감이 느껴진다.

 

대좌는 밑면이 반원형인 상현좌로 둥근 방석이 올라가 있다.

 

전형적인 밀랍주조법으로 한 번에 통으로 제작했다.

머리에는 대좌까지 사각 철심이 내려가 있고, 가슴에는 X자로 철심을 교차해 팔 안으로 들어가 있는데

철심은 따로 묶지 않고 구멍을 뚫었다.

 

수리 흔적은 세 곳으로 본체와 동일한 성분은 제작 당시 수리한 것이고

연화좌, 대좌 일부분은 9세기 양식을 보여 통일신라 이후 수리한 것으로 보인다.

 

4. 참고문헌

📚 참고문헌
  • 문명대. 「국보 78호 금동반가사유상의 신연구」, 『강좌미술사』 55, 2020, 255-272쪽.
  • 문명대. 「국보 83호 삼산보관형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의 새로운 연구」, 『강좌미술사』 55, 2020, 273-294쪽.
  • 민병찬. 「금동반가사유상의 제작 방법 연구 – 국보 78·83호 반가사유상을 중심으로」, 『미술자료』 89, 2016, 191-213쪽.
  • 김리나. 「동아시아 고대 불교조각의 흐름에서 한국 삼국시대 불교조각의 변주」, 『미술자료』 89, 2016, 29-52쪽.
  • 양지숙. 「삼국시대 금동미륵반가사유상 연구」, 전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3.
  • 김미현. 「삼국시대의 미륵 반가사유상 연구」, 한남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2.